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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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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20/06/19 [08:54]

 

모처럼 어느 기독교 서점에 들렀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전자책이나 인터넷이란 새로운 것이 등장하여 종이책을 찾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데, 유독 이 서점만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한참을 이 책, 저책을 들춰 보는데 40대 초반의 말쑥한 옷차림에 두 신사가 들어왔다. 두 사람의 대화중에 ‘너희 꼰대 잘 있느냐?’ 는 이들의 말이 내 귀에 들려 왔다. 남의 말에 관심과 참견을 할 일은 아니지만 이들의 대화에 촉각을 세웠다. 그 다음이 가관인 것은 ‘우리 꼰대와는 세대차이가 너무 나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아서 회의 때 마다 죽을 맛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들이 교회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권의 책을 사들고 나오려는데 서점의 노주인 왈 ‘저런 몰상식한 자들이 성직자라니 한심스럽다’며 얼굴에 노한 기색이 역역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면서 ‘사장님이나 나나 나이가 들만큼 들어 세대차이가 나니 꼰대 소리를 들을 때가 왔나봅니다.’ 언중유골이라 했던가. 자식 같은 새파란 젊은 목사가 아버지 같은 장로를 비꼬아 꼰대라고 하니 장로였던 서점 주인이 화가 날만도 하다.  꼰대란? 비속어의 근원은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든 남자를 가리켜 대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隱語)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 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변형된 속어가 됐다. 1960~70년대 내가 청소년이었던 때 완고한 아버지나 교사 등 남자 어른을 가리키는 은어로 썼던 경험자로써 그 당시 대중 매체를 통해 속어로 확산되었다. 나는 가끔씩 자식들을 만나면 작은 토론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때, 내 경험이나 상식으로 볼 때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른데 아이들은 또 다른 것이라고 말해 설득하려고 드니 나도 모르게 구세대 꼰대를 자처하는 꼴이다. 한 시대가 급격히 변한 것을 체감 못하며 ‘우리 때는 부모나 선배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였지 너희들처럼 시건방지게 이유를 단다거나 대든 적이 없었다.’는 등 자기가 살아온 것이 옳다는 것만 내세운다면 틀림없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끼리도 의견이 다른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종교, 사상의 차이가 있고 지적수준과 세계를 보는 시야가 다르기 마련인데, 보편적인 상식에도 못 미치는 자기주장만 앞세운다면 남, 녀 나이에 상관없이 꼰대라는 괴물이 자기 안에 도사려 있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젊어 이래 돈만 아는 졸부(猝富), 팔순이 넘어 조선대 가부장 노릇만 하는 진짜 졸부꼰대가 있었다. 돈은 모을 때도 어렵다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쓸 때 잘 쓰지 못하고 기회를 잃으면 그것은 죽은 돈이기 때문이다. 그 졸부는 부동산이며 그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병든 마누라를 큰 병원에 입원한번 시킨 일 없고 통장하나 만들어 준 일 없다. 노년에 황혼 이혼이 많은 것은 이런 욕심 많은 독선의 꼰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오백년 살 것 같던 그 졸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밤새 안녕! 하고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동네사람과 그를 아는 사람마다 ‘그 돈 아까워 어떻게 다 놓고 갔노?’ 비웃었다. 초상마당에서 딸, 자식들이 유산 다툼이 벌어졌다. 내가 장남이니 뒷논 10배미(10억 상당)과 통장 5억 원은 내 몫이고, 나머지는 누이, 아우들이 알아서 나눠 가지라는 등, 상중에 유산 다툼을 본 8순의 병든 노모는 기가 막혀 슬피 울었다. 아버지가 부자니까 평소에 자식들은 중병이 든 노모를 관심 밖으로 간병이나 병원에 입원 한번 시킨 일 없다. 노모는 병든 몸으로 다리를 질질 끌며 남편 빨래며 식사를 도맡아 평생을 인격을 무시당하며 종처럼 늘그막 까지 강제노역만 당한 꼴이다. 병든 노모는 누구의 조언을 들었는지 딸,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서 ‘너희 아버지와 내가 일궈놓은 재산은 이제 내 것이니 큰 병원에 가 내 병도 고치고, 내 남은여생에 돈 한번 쓰다가 죽겠다.’며 내 집에 얼씬도 말라고 호통을 쳤다. 인정 없는 비정한 그 아버지에 그 자식들은 천하에 불효막심한 꼰대들인 셈이다. 2019년 말 J 신문사에서 2-302000명에게 연령별 꼰대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50대가 35%1위며, 다음이 4021%, 세 번째가 7020%, 60대가 13% 순으로 오히려 젊은 중, 장년층이 꼰대 비율이 높았다. 은퇴한 노인 연령층이라 하여 젊은이들에게 위축들것은 없다. 오히려 세상경험을 지혜로 삼고 철없는 젊은이들에게 본을 보인다면 꼰대가 아니라 스승격인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공자는 60에 이순(耳順)이라 했는데, 나이가 들면 남의 말을 많이 들을 줄 알아야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돌아가는 뉴스와 인터넷도 굽어보고 젊은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우릴 줄 알아야 한다. 붙잡을 수 없는 세월에 나이 먹기도 서러운데 내 생각만 옳다고 편견에 치우치다 보면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니 노년에 각별히 조심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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