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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 이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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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20/05/22 [09:28]

 

 

 

5·18 진상 규명과 한국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부정행위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회피와 꼼수로 재판에 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제 광주 시민들은 분노를 승화시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때이다.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 민중 항쟁, 광주 시민 항쟁, 광주 항쟁, 광주 의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발언들도 여전히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항구적인 5·18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대응보다 사법 시스템을 통해 전 씨를 단죄해야 한다. 5.18 민주화 운동의 남은 과제 중 최우선은 발포 명령의 책임자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토대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치유되어야 화해가 있고, 또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출발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다.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화해가 있고 통합이 있을 수 있다. 아직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암매장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시신도 찾아야 한다. 전두환 씨에 대한 처벌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5·18의 역사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역사와 국민 앞에 반성하지 않는 전 씨를 철저히 단죄해야 한다.

 

5·18 민주화 운동은 19805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정 수립, 신군부 세력의 퇴진 등을 요구한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은 12·12 사태를 통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해 나갔다.

 

이들은 최규하 과도 정부를 무력하게 만들고 민주적 정부 수립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다져 나갔다. 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1980515일 서울역 시위를 계기로 학생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위협을 느낀 신군부 세력은 517'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민주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투옥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의도는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시민들은 폭도로 매도당한 채 고립된 속에서 군의 잔악한 진압과 학살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무장을 갖추고 이후 10일 간의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군의 대대적인 폭력 진압으로 민주화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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