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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구씨(昌原具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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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6/05/19 [00:43]


시조 구성길(仇成吉)은 고려 혜종 때 권신 왕규의 전횡을 토벌하여 의창군에 봉해진다. 의창은 창원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창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구(具)씨는 원래 구(仇)씨였으며 성을 바꾼 것은 조선 정조 때다. 후손 구시창(仇始昌)이 초관(哨官)의 후보자로 왕에게 천거된다. 왕이 보고 "구성(仇姓)은 구성(具姓)만 못하니 구(具)로 고치라“고 했다.
중시조 구종길은 1363년(공민왕 12) 경남 의창군 북면 내곡리에서 생원 구설 의 아들로 태어났다. 주역에 통달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진력하다가 늦게 벼슬길에 나선다. 1422년(세종 4)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를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구종길의 아들 4형제가 창원구씨의 4대 산맥을 이룬다. 맏아들 구복한은 부사공파, 둘째 구동설은 진사공파, 셋째 구동직은 승지공파, 막내 구석훈은 처사공파로 각각 분파되었다.
구자평(仇自平)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살았다. 1454년(단종 2)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정자가 되었고,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익원종 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462년 선전관을 지내고, 1467년 예조정랑을 역임했다. 1477년(성종 8)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구정열(仇廷說)은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권지(校書館權知)를 지냈다. 사후에 문장공(文章公)의 시호(諡號)를 받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었다.
구종길의 7세손 구응진은 임진왜란 때 제포만호로 김해, 노현 등지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나 왜군에게 무참히 처형당했다. 그의 아우 구응삼도 임진왜란 때 훈련원첨정으로 선조를 의주에까지 호종하고 전쟁에서 순절했다.
진사 구명람의 아들 구응성은 구응진의 종제(從弟)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훈련원주부로서 의병을 모아 권율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순절했다. 그의 아들 구동 은 약관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의령, 함안 등지에서 이름을 떨쳤다.
1967년 구응진(仇應辰), 구응삼(仇應參), 구응성(仇應星), 구동(仇棟) 등 일문4충(一門四忠) 4부자형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경남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에 사충기적비(四忠紀蹟碑)가 세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제목을 써서 그들의 충절을 추모하였다.
현대 인물은 구봉홍(대종회장), 구영보(장학사), 구영창(특허청심판관), 구재계(면장), 구영학(동대문상가주택회장, 대종회장), 구진현(동방생명보험고문), 구치명(대명전기사장), 구영선(문화주택소장), 구영수(삼성그룹기획실장), 구익근(대종회총무), 구흥렬(철성사사장), 구창복(상업은행부장), 구찬수(기아산업이사), 구수옥(중앙사대표), 구창순(동방증권이사), 구현옥(부산방직전무), 구의남(경전산업사장), 구봉익(제일생명부사장), 구진웅(혁진산업사장), 구호현(천미광유사장), 구창웅(공진양행대표), 구상문(진로의료보험 사무국장), 구재흠(고향문화사대표), 구재성(함창공업사장), 구재헌(성진염색상무), 구수영(충남대교수), 구종수(의학박사), 구영도(초등교장), 구영규(초등교장), 구광조(부일학원장), 구재호(초등교감), 구재삼(초등교감), 구영을(육군대령), 구선영(육군대령), 구임섭(대종회장), 구상우(대종회장), 구효(대종회장), 구상갑(대종회부회장), 구수진(마산종친회장), 구종태(서울종친회부회장), 구계호(서울종친회고문), 구수만(서울종친회장), 구기섭(부산동원한의원장), 구영무(한의대병원한의사), 구영근(세무사), 구영갑(음악가), 구창훈(농협전무), 구영섭(문화방송차장), 구윤근(전북종회장), 구연근(대종회고문), 구영보(토강회사장), 구두영(대국종회장), 구영순(전북종회총무), 구영록(1934~2001.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 구영만(초상화가), 구용서(상공부 장관), 구용현(11대국회의원), 구상찬(1957~18대국회의원), 구인옥(창원구씨역사연구회회장)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부사공파(府使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처사공파(處士公派) 등이다.
항렬자는 21세 東동, 22세 煥환, 23세 在재 載재, 24세 鎭진 鈺옥, 25세 永영, 26세 根근, 27세 炳병, 28세 孝효, 29세 鍾종, 30세 洙수, 31세 相상, 32세 烈열이다.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세(世)에서 1을 뺀 값이 대(代)가 된다. 예를 들면 58세손(世孫)의 경우 57대손(代孫)이다.
본관 창원(昌原)은 경상남도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이다.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에 속했으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합포현(合浦縣:馬山)?웅신현(熊神縣:熊川)?칠제현(漆?縣:漆原)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의안군의 별칭은 구사군(仇史郡)이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金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되었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창원지방은 합포를 중심으로 연합군의 기지가 되었다. 그 공으로 1282년에 의안군이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이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되었다. 1408년(태종 8)에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었으며, 1413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갔다. 1661(현종 2)~70년(현종 11)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창원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창원시로 분리 승격되었다.
집성촌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와 북면 내곡리 등이다. 시조 구성길 이후 구설 이전까지는 세거지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구설 이후는 묘롱지(墓壟地)가 족보에 창원에 집중되어 있다. 창원시 동읍 봉산리에는 시조공(始祖公) 의창군 구성길의 유허비 및 제단과 중시조 천곡공(川谷公) 구종길의 제각이 세워져 있으며 매년 10월에 제향한다. 구종길의 묘갈명과 구복한 묘 및 불피 고개에 묘역이 전해지고 있다. 부산 지역은 입향조인 구맹립(仇孟笠)이 임진왜란 이전에 동래군 사상면 덕포리에 이거하였다. 부산 지역은 부사공파 구맹립을 입향조로 한다. 구종길(具宗吉)의 맏아들 구복한(具復漢)이 강계도호부사를 역임하였기에 후손들은 창원구씨 부사공파 파조로 하고 있다. 2000년 현재 1,036가구에 3,376명(남 1,822명, 여 1,554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 사상구 덕포동 등지에 많다. 부사공파 동래 문중에서는 해운대구 석대동에‘구영취공 기공비’를 비롯‘구주성공 정효비’‘창원 구씨 부사공파 제단비’등을 세워 창원구씨 충효원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 무과 급제자 9명을 배출하였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창원구씨는 1985년에는 총 5,056가구 22,127명, 2000년에는 총 4,391가구 14,03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오히려 6백여 가구, 8천여 명이 줄어들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774명, 부산 4,120명, 대구 855명, 인천 339명, 경기 1,729명, 강원 473명, 충북 237명, 충남 1,068명, 전북 1,071명, 전남 1,054명, 경북 1,096명, 경남 6,236명, 제주 74명이다. 경남과 부산에 절반가량이 살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757명, 부산 3,376명, 대구 384명, 인천 228명, 광주 34명, 대전 134명, 울산 410명, 경기 1,324명, 강원 189명, 충북 87명, 충남 140명, 전북 540명, 전남 98명, 경북 442명, 경남 4,866명, 제주 26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남과 부산 지역에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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